공민왕은 충숙왕의 둘째 아들로 12세때 원나라로 볼모가 되어 가서 10년을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똑똑한데다 태도도 영민하여 원에서 총애를 받았고, 원나라에서 평생의 사랑인 노국공주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원 정세가 긴박해지자 고려안정을 위해 당시 고려의 충정왕을 끌어내리고 원에 있던 충정왕의 삼촌인 공민왕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원의 입장에서는 원나라에서 오랜기간 살아온 공민왕이 다루기 쉽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공민왕은 즉위하자마자 원나라의 예상을 깨고 원나라의 변발과 복제를 폐하고 권문세족의 수장으로 막대한 권세를 누리면 기철을 숙청합니다.
이 기철이라는 사람을 말할 것 같으면 그 유명한 기황후의 오라비로 당시 기황후는 원제국의 황후였습니다.
라마교에 빠진 황제를 대신해 사실상 권력을 잡고 있던 기황후는 분노했습니다.
공민왕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정동행성 이문소(당시 원의 내정간섭기구)를 혁파하고 빼앗겼던 동북면을 되찾는 등 공민왕을 왕으로 앉힌 원나라의 입장에서는 정말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습니다. 공민왕은 자기를 왕으로 세운 원나라에 대해 감사한 마음은 커녕 고려의 보위를 멋대로 좌지우지한 원의 간섭에 분노하고 있었음을 행동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공민왕은 원나라에 빼앗겼던 자주권을 되찾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려 하였으나, 원이 약화됨에 따라 홍건적과 여진, 왜구들의 침략에 공민왕의 의도와는 다르게 국토는 전란에 휩싸이고 백성들은 피난보따리를 싸는 등 강력한 개혁이 외세영향으로 기회를 잃게 되었습니다.
고려의 권신으로 공민왕에게 원한이 많았던 최유가 원나라로 들어와 기황후를 부추켜 황제로 하여금 공민왕을 폐하고 덕흥군을 새 고려왕으로 선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 집행을 위해 덕흥군과 최유에게 군사1만을 주어 고려로 보냈습니다.
공민왕은 그러자 최영장군을 보내 군사를 지휘하게 하고 이성계도 보냈습니다.
당시 이성계는 여러 장군들을 나무라며 용기없음을 비판했고, 이에 분노한 장군들은 이성계 혼자서 적을 앞서서 상대하게 했습니다.
이성계부대는 좌중우 각 방면의 선봉을 맡아 평원에서의 정면충돌로 붙었고 이성계와 그의 군대는 죽기 살기로 싸웠습니다.
그 기세에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_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개국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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